출처 : 마운틴저널(http://www.mountainjournal.co.kr) 카라비너-생명을 죽이는 도구에서 살리는 도구로
카라비너는 등산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으며, 그 용도는 현재 무궁무진하다. 군사용, 산업용, 장식용 뿐 아니라 그와 유사하게 생긴 형태의 모든 고리를 두고 카라비너라고 통칭해 부르고 있다. 산악인들에게 카라비너는 생명을 잇는 고리, 로프와 로프 사이를 잇는 결속을 뜻하며, 또 암빙벽등반 중 어떤 다른 장비보다도 흔하게 쓰인다.
독일어로는 ‘Karabiner(영어권에서는 K대신 C로 표기)’ 영어로는 ‘덥석 연결하는’ 스냅 링크(snap link) 또는 그 생긴 형상 때문인지 ‘게’와 같은 크랩(crab)이라고도 불리는 카라비너가 이미 등산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건 100년에 가깝다. 등산장비로는 나름 철의 시대를 대표하는 중고참이지만, 카라비너라는 말뜻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카라비너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기병용 소총’을 뜻하는 카라빈(carabine)으로 거슬러간다. 16~17세기에 만들어졌던 사냥용이나 군사용 총들은 지금과 같은 어깨끈이 달려있지 않았다. 따라서 총을 들고 다니기가 매우 불편했는데, 기마병들이 최초로 총신이 짧은 경 소총에 어깨끈을 달아 사용하며 끈과 총사이를 연결하는 고리를 두고 카라비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어 카라비너는 독일로 전용되며 최초의 등반용 카라비너를 고안한 독일 산악인 오토 헤르조그(Otto Herzog·1888~1964) 또한 기총 걸쇠라는 뜻의 카라비너하켄(Karabinerhaken)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즉 카라비너의 용도는 꼭 등반용뿐 아니라 두 개의 물체를 연결하는 고리의 의미로 사용되어온 것이다.
1910년 경 독일의 오토 헤르조그가 개발
등반용 카라비너가 태동한 건 1910년 경으로 알려져 있다. 오토 헤르조그는 1923년 구스타브 하버와 함께 드라이젠켄 슈피체 북벽을 3일간 초등 하며 최초로 암벽등반의 6+급 시대를 연 당대의 명 클라이머이기도 하다. 그는 초짜 시절부터 보는 눈이 남달랐는지, 어느 날 뮌헨의 화재현장에서 소방수들이 고압의 송수관을 잡고 물을 뿌리며 몸을 고정하기 위해 서양 배 모양의 고리를 사용해 확보하는 것을 보고 이를 등반에 적용할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가 본 고리는 1853년부터 베를린 소방대에서 ‘베를린 벨트 후크’라는 이름으로 사용해오던 장비였다.
특히 1910년 즈음은 근대 암벽등반 장비와 기술에서 큰 획을 그은 해이기도 했다. 오토 헤르조그의 자일파트너였던 한스 피히틀(Hans Fiechtl·1883~1925)은 현대 피톤의 원조 격인 피히틀 버티컬 펙(Fiechtl vertical peg)을 고안하고, 또 다른 친구 한스 듈퍼(Hans Dulfer·1893~1915)는 듈퍼지츠 하강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듈퍼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하고 피히틀도 가이드 등반 중 추락해 짧은 생을 마치고 만다.
카라비너는 다른 장비들과 달리 보수적인 산악인들 사이에서도 곧 받아들여지고 빠르게 확산되어 갔다. 그전까지 영국의 저명한 산악인 누구도 암벽에서 로프를 사용해 등반할 때 로프와 확보점을 연결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저 선등자는 절대 추락하지 않고 용맹하게 올라야할 뿐이었으며, L자 모양으로 꺾인 피톤에 로프를 걸쳐놓는 것이 전부였기에, 추락 시 생명을 보존한다는 것은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하는 일이었다.
초기 카라비너는 다양한 형태로 디자인 됐지만, 가장 제작하기 쉬운 O형 카라비너가 주종을 이뤘다. 그 소재는 대부분 쉽게 구할 수 있는 연철이었기 때문에 300kg 남짓한 충격에도 파손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카라비너가 군사용으로 사용되며 대량 생산으로 인한 대중화와 함께 또 한번 도약하는 계기를 맞는다. 1935년에는 최초로 잠금장치가 달린 카라비너가 나왔고,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1940년대에는 강철로 된 카라비너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세계대전은 등산장비에서 많은 변화를 낳았다. 많은 장비들이 군용으로 사용되며 보다 가벼워지고, 튼튼해졌으며 보다 편리하게 고안되었다. 이 시기 나일론 의류, 비브람 창, 나일론 로프 등과 함께 카라비너에도 신소재가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1941년 미국 육군 산악장비 개발위원이었던 윌리엄 피 하우스는 최초로 알루미늄을 사용해 카라비너를 만들었다. 이는 그전 강철로 된 카라비너에 비해 무게가 절반도 되지 않아 여러 개를 가지고 다녀도 오히려 배낭 무게는 더 가벼워진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50년, 프랑스 산악인 피에르 알랭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카라비너로 한 단계 더 진보된 강도를 지닌 카라비너를 개발했다.
2차 세계대전 계기로 비약적인 발전
하지만 이때까지 시중에 나온 카라비너들은 그 구조적인 면에서 강도에 한계가 있었다. 타원형으로 생긴 카라비너는 항상 긴축 쪽으로 힘을 받도록 되어있는데, O형이나 삼각형, 눈사람 모양의 B형 카라비너들은 늘 무게가 정 중앙에 실려 큰 충격을 받았을 때 게이트가 벌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미국 클라이머 이본 취나드는 이를 보완해 힘이 실리는 지점이 항상 게이트에서 가장 먼 쪽에 있게 되는 D형 카라비너를 최초로 개발해낸다. 그가 만든 카라비너는 당시 4800파운드(2177kg)의 인장강도를 기록해 획기적인 발명으로 각광받게 된다. 그가 만든 등반장비 브랜드 취나드(현 블랙다이아몬드)는 이후 최근까지 국제산악연맹 인증을 받지 않고 자체 기준인 ‘취나드 스탠다드’를 적용했지만 여전히 많은 클라이머들이 애용해왔다.
현재와 같은 잠금카라비너인 ‘스크루게이트 카라비너’를 고안한 사람은 이탈리아 등반가 발터 보나티이다. 드류 서벽을 단독 등반하며 최초로 짐을 끌어올리는 방식인 홀링 시스템을 고안하기도 한 그는, 홀링이나 하강 시 바위에 부딪혀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반 카라비너 두 개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무게 면에서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한 손으로도 쉽게 열고 닫을 수 있으며 안전한 잠금 카라비너를 고안해냈다.
한국전쟁 이후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산악인들은 초기 미국 SMC사에서 군용으로 제작한 O형 스틸카라비너를 등반용으로 사용했다. 당시에도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카라비너들이 각국에서 출시되었고, 일본은 1930년대부터 카라비너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국내 장비점에서 구할 수 있는 물량은 많지 않았다.
1970년대 초반 모래내금강에서도 카라비너가 생산된 적이 있지만, 당시 등산기술서적을 보면, ‘일부 국산 카라비너는 모양은 안전환까지 있어서 그럴 듯 하나 실제 충격의 시험이 불명해서 그 안전성이 확실치 않다’고 적고 있다. 어디서든 매달려도 안심할 수 있는 최초의 국산 카라비너를 볼 수 있게 된 건, 이 땅에서 근대 등산이 태동한 지 60년이 지난 1998년, 트랑고(TRANGO)사에 의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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