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7(일) 설악산 토막골 형제폭 후기
성북K클라이밍 까페의 장미연 회원님의 산행기를 함께 공유합니다.
2021년 첫 산행이자
내 인생 최초 빙벽 체험기
시작합니다.
한겨울 설악산에 가기 위해서 간만에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5시에 센터에서 출발.
설악산 입구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7시 50분 경 매표를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빙벽화를 신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평소에 신던 등산화와는 다른 어마어마한 무게감과
발등, 발목까지 누르는 압박감이 너무 어색했다.
시작할때는 몰랐죠..내려올 때 사진 찍을 정신이 없을 거란 걸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아스팔트 길을 걷자니 발가락에 쥐도 나고 멍드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눌리는 부분이 아팠다.
주변에 펼쳐진 쌍천과 계곡을 구경하면서 걷기란 무리였다. 무거운 신발과 어색한 걸음 걸이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걸었다.
그렇게 비선대 계곡까지 걷다보니 뒤로 쳐진 나를 기다려 주고 계셨다.
이때 처음으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한숨 돌리며 주변을 보니 간만에 보는 장군대와 적벽, 흰 바위와 흐르는 물 위로 얼어있는 얼음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부터 계곡으로 접어들어야 하니 겉옷은 더울 것 같아서 베낭에 넣어두고 이미 짐이 되어버린 따뜻한 핫팩도 패딩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비선대 갈림길을 지나 바로 왼쪽으로 접어들면 바위길이 시작되는데, 9시 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지는 너덜길
빙벽까지의 접근로가 가장 짧은 길이라는게 믿기지 않았다. 이 너덜길을 한시간을 걸었으니까....
계곡으로 접어들고 10분 정도 걸으면 보이는 짧은 얼음벽 위로 넘어갈 때쯤엔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겨울의 설악산을 온다고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게 약이라고 아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그게 내가 될 줄이야.
내가 길을 잃지않게 기다려주시고 같이 가주신 덕분에 꾸역꾸역 꽤 많이 걸었을 때,
빙벽이 보인다고 하셔서 기쁘게 고개를 들었다.
어마어마하게 줌 한 사진
....? 빙벽이요...? 어디에 있나요...?
뭔가 흐릿하게 허연게 보이기는 하는데...
그렇게 10분여를 더 큰 바위들을 헤치고 얼음을 피해 밟아가며 올라가자 드디어 형제폭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진짜 높았다. 계곡 초입에서 봤던 짧은 얼음벽을 봤을 때와는 완전 다른 감정이 들었다.
하얀 얼음벽과 상단부에 작게 자리한 해가 만나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센터장님은 도착하자마자 쉴 틈없이 장비 착용하시고 우리가 연습할 수 있게 줄을 걸어주셨다.
스크류로 확보점을 설치하는 것도, 빙벽화에 크램폰 씌우는 것도 처음봐서 이것저것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도움을 받아서 크램폰 장착하고 바일을 들고 빙벽 앞에서 간단하게 교육을 받았다.
무릎을 축으로 차야되고, 세컨날로 버텨야되니까 발을 수평이 되게 하고, 바일은 손목까지 회전운동을 해줘야하고...
빙벽 아래에서 몇번 연습하고 자일을 묶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어? 진짜? 나 여기 올라간다고??
센터장님이 찍어주신 사진
사실 빙벽을 어떻게 올라갔는지 별다른 기억이 없다.
눈 앞에 누군가 찍었던 흔적이 보이는 곳에 바일을 찍어넣고, 발을... 발을 찾아야하는데 안보이고.
발을 수평으로 찍으라고 하셨는데, 수평이 뭔가요... 일단 어떻게든 찍어야겠어요.
얼음이 살짝 패인 곳이 좋다고 하셨는데 내 눈에는 다 튀어나와 보이고.. 세컨날로 지지하는 거라고 하셨는데 나는 세컨날까지 박히지도 않고.. 너무 푹 들어간 바일이 빠지지 않을 때도 있고..
손손발발
한발한발 천천히 얼음을 기어올라갔다.
패딩까지 입고 올라갔었구나..
조금 쉬려고 버티고 서있자니 종아리가 너무 당겨서 한 발씩 더 내딛기도 하고, 좀 잘 버틸 수 있겠다 싶으면 그자리에서 조금 쭈구려 앉아서 쉬기도 하고, 발이 미끄러져서 바일에 매달리기도 하고, 잘 박혀있다고 생각했던 바일이 빠지기도 하고.
포기할까를 두어번 생각하고 남은 거리를 보고 있을 때 얼마 안남았다고 끝까지 가보라고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확보점 되게 멀리 있는 것 같은데요...ㅠㅠ
여하튼 내려주시지는 않겠구나 싶기도하고 아래를 보니 그래도 온 것보다는 조금만 더 가면 되겠구나 싶기도 해서 억지로 발을 조금씩 올렸다.
숨이 차기 보다는 발이, 너무 무거웠다.
꾸역꾸역 올라가길 잘한듯. 끝까지 안갔으면 억울할뻔
확보점이 보이고 완료를 외치고 나니까 그제야 내가 서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얼음벽 한 가운데에 바일을 찍고 기대어있었다.
위로도 아래로도 온통 얼음뿐이었다. 춥기보다는 오히려 더웠고 한겨울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다들 내가 느릿느릿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할 수 있다고 격려도 해주시고 알려주시고 확보도 봐주셔서 감사했다.
한번씩 갔다오고 준비해간 점심을 간단하게, 맛있게 먹고 계속 연습하실 분들은 빙벽을 오르락 내리락 하셨다.
또다시 도전할 용기가 없는 나는 오늘은 거기서 포기.
한 번 등반을 마친 뒤로는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아래에서 다른 분들이 올라가는 것을 보니 내가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어렵게 올라갔는지 눈에 보였다.
아무리 날이 따뜻했다고 하더라도 빙벽 근처에서 있다보니 추워져서 이것저것 챙겨온 보온 장비들로 꽁꽁 감싸고 따뜻한 물도 마셨다.
올라올 때는 짐이 되었던 핫팩들을 다시 손에 쥐고, 장갑을 끼고, 패딩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높디높은 빙벽을 바라보며 코코아를 마시는데 기분이 달달해졌다.
정오가 지나니까 해도 뒤로 넘어가고 중간중간 안개도 가득 꼈다. 안개 낀 빙벽은 완전히 시야가 보였을 때보다 훨씬 무섭지만 신비로워 보였다.
안개 속에 갇혀서 벽이랑 등반하는 사람밖에 안보였다.
날이 조금 따뜻해서인지 얼음이 많이 녹아서 떨어지기도 하고, 자일이 물에 젖어서 확보 때도 하강 때에도 마찰이 심해진게 느껴졌다.
마지막 등반까지 완료하시고 자일을 회수하고 하산을 시작할 때가 오후 3시 30분 쯤이었던 것 같다.
올라왔던 길을 다시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는데, 토독토독 싸리눈이 마치 우박처럼 쏟아졌다. 작은 눈 알갱이들이 바위에 부딪쳐서 내는 소리가 어서 내려가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온갖 바위와 풀과 나무와 흙들을 손으로 잡고 발로 밟으면서 너덜길을 헤치고 내려왔다. 분명 내려올 때 당시에는 다시는 걷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또 나름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
빙벽화가 큰만큼 내가 원하는 위치에 발을 딛기가 어렵기 느껴졌다. 조금 더 무릎을 올려야했고 조금 덜 내딛어야 됬다. 바닥창이 자꾸 바닥을 훑듯이 툭툭 건드렸다.
계곡이 끝나가는게 보이고 평탄한 길이 나오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분명 빙벽화 신고 올라올 때는 그 힘들었던 길이 같은 빙벽화를 신었음에도 마치 뛸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기분.(기분만)
또다시 길고 긴 산책로와 아스팔트 길을 지나 불상과 건물들의 빛이 보였을 때는 진짜 다 왔다. 하고 안도감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신발을 갈아신고 싶었다.
주차장에 다다라 신발을 벗는데, 와 자유가 이런 거구나를 느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이틀이 흐르고 산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의 내가 또 빙벽화를 신고 싶어할 줄.
산에 다녀오고 이틀이 흐른 지금, 평소에 안쓰던 근육들을 갑자기 사용한 대가로 어마어마한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다.
바일을 들고 휘두를 때 썼던 어깨와 팔, 빙벽화를 끌고 걸어갔던 종아리 근육들이 아직도 저릿저릿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긴 글 내내 힘들었고, 어려웠고, 무거웠고, 추웠다는 얘기밖에 없는데도 정작 산행기를 쓰기 위해 빙벽에서 느꼈던 생각과 기억들을 끌어내고 있자니, 왼쪽 손목을 어떻게 힘을 줄지, 발을 좀 덜 생각하고 찍는 건 어떨지, 다른 사람들 자세가 어땠는지, 내가 할 수 있을지까지 질문이 이어지고 다시 해볼까?라는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생각은 꾸깃꾸깃 접어서 내년쯤에나 다시 펼쳐봐야겠다.
+ 어려운 산행길에 저라는 짐과 함께 가주신 센터장님과 영일오빠, 문근씨 정말 감사드려요. 부족한 점도 많고 투덜거림도 많았을텐데 잘 다녀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특히 센터장님! 빙벽 체험을 많이 망설이고 있었는데 흔쾌히 같이 가도 된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출처] 2021.02.07(일) 설악산 토막골 형제폭 후기 (성북 K · 경동 클라이밍) | 작성자 장미연